'유승민보다도 어린 MZ 회장?' 韓 체육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출처:노컷뉴스|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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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계가 달라지고 있다. 군대 못지 않은 엄격한 위계 질서가 여전했던 한국 스포츠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체육계 전체를 이끌어갈 수장과 동계 스포츠의 대표 격인 빙상을 견인할 회장에 80년대생 MZ 세대가 현 회장을 넘어 당선되는 파격적인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생활 체육에 상대적으로 밀렸던 엘리트 스포츠계가 똘똘 뭉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연륜과 경험이 우선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참신하고 깨끗하며 능력이 있는 인사가 종목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각 종목 단체 회장 선거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과연 2025년 새해 한국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이기흥 아성‘ 무너뜨린 유승민의 기적, 韓 체육 변화의 신호탄

지난 14일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부터 대이변이 벌어졌다. 3선이 유력했던 이기흥 현 회장(70)이 낙선한 것. 2016년과 2021년 선거에서 당선된 이 회장은 이번에도 ‘한국 체육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1982년생 43살의 유승민 후보가 당당히 당선증을 받았다. 유 당선인은 2244명 선거인단 중 1209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417표를 얻어 379표의 이 회장을 제쳤다. 34.4%의 득표율로 31.3%의 이 회장을 넘었다.

역대 최다 후보가 출마한 역사적인 선거의 승리자였다. 이번 선거에는 유 당선인과 이 회장 외에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215표),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120표), 오주영 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59표),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총장(15표) 등이 출마했다.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회장은 2016년 선거에서는 약 33%, 2021년에는 46.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8년 동안 체육회장을 하면서 이 회장이 기반을 더욱 다져 이른바 범야권에서는 단일화만이 유일한 승리 해법으로 보였다. 이전 2번의 선거 모두 단일화가 무산돼 이 회장이 반사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당선인은 과감히 단일화를 포기하고, 독자 노선을 택한 끝에 승리를 쟁취해냈다.



그만큼 한국 체육계 내부에서 변화에 대한 열망 컸다는 분석이다. 선거 전 한 종목 단체 관계자는 "이른바 어르신들의 정치 싸움에 염증을 느끼는 체육인들이 많다"면서 "권력을 떠나 정말로 한국 체육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젊은 회장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낸 바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 회장에 대해 "예전에는 정부와 맞서 불합리한 부분들을 개선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본인의 3선을 위해서만 활동하는 느낌"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 당선인의 젊은 패기와 능력이 인정을 받은 모양새다. 유 당선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 2012년 런던 대회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여기에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으로 선출됐고, 대한탁구협회장과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가로서도 경험을 쌓았다.

여기에 체육회 산하 68개 종목 단체를 모두 찾아가 실제 종목을 경험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유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하루 평균 25km를 걸으며 체육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테네올림픽 당시 남자 대표팀 코치로 유 당선인과 금메달을 합작한 스승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총감독은 "이런 열정으로 유승민은 기적을 일궈왔다"면서 "유승민 자체가 가장 큰 무기였다"고 돌아봤다. 탈권위의 역대 최연소 대한체육회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격동의 韓 배드민턴 구원자로 종목 전설 낙점…韓 빙상 회장은 1983년생 女 피겨 선수 출신

지난해 파리올림픽 이후 전국민적인 관심 종목이 된 배드민턴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김동문 원광대 교수(50)가 회장으로 선출됐다.

김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3일 진행된 제32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선거에서 64표를 얻어 43표의 김택규 현 회장을 넘어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 전경훈 회장(39표), 대구배드민턴협회 최승탁 전 회장(8표) 등을 제쳤다.



사실 김택규 회장은 2021년 취임 뒤 4년 동안 실적으로만 보면 연임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따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노 메달 수모를 씻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 3개를 수확하는 성과를 냈다. 공식 스폰서인 요넥스와 재계약에서 후원액을 190만 달러에서 290만 달러로 대폭 증액하며 재정도 늘렸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따낸 안세영(삼성생명)의 이른바 폭탄 발언으로 김 회장의 입지가 흔들렸다. 대표팀과 협회 운영을 비판한 안세영의 발언에 김 회장은 비난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다각적인 구도에서 보면 안세영의 불만은 코치진, 선배 등 대표팀 내부에 대한 부분이 많았지만 오롯이 김 회장이 타깃이 됐다.

여기에 김 회장과 갈등을 빚은 배드민턴계 인사들이 안세영 발언을 계기로 협회를 공격하면서 비난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기흥 회장과 대립한 문화체육관광부도 때를 놓치지 않고 종목 단체의 기강을 잡듯이 사무 검사에서 협회를 탈탈 털었다. 어쨌든 안세영 발언에 대한 결과물을 내야 했던 문체부는 보조금법 위반 등 횡령, 배임 혐의로 김 회장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하고, 협회에는 해임을 건의했다.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협회장 선거운영위원회는 규정 위반 논란에도 선거를 강행했고, 김 교수가 당선됐다. 선거 운동 기간 부족 등 불공평한 조건 속에 김 회장도 출마했지만 변화를 원하는 흐름을 극복하지 못했다. 김 회장과 극심한 대립을 벌인 베테랑 배드민턴인들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이들이 밀었던 전경훈 회장도 김 회장보다 적은 표를 얻는 데 그쳤다.

김 교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과 아테네 대회에서 하태권 전 요넥스 감독과 각각 혼합 복식,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전설이다. MZ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1975년생 비교적 젊은 나이인 김 교수가 혼란의 한국 배드민턴을 구해낼 적임자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다음날인 24일 열린 제34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선거에서는 유승민 당선인보다 어린 후보가 당선됐다. 1983년생 이수경 삼보모터스그룹 사장이 한국 빙상을 이끌게 됐다.

물론 이번 선거에는 전임 윤홍근 제너시스BBQ그룹 회장 등 다른 후보들은 나서지 않았다. 이 사장의 단독 출마였다.

하지만 빙상도 한국 체육 전체를 관통하는 변화의 흐름에 있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이 사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연맹 이사를 맡고, 현재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국제 심판과 데이터 오퍼레이터로 현장과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당선 뒤 이 사장은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지 몰랐지만 언젠가 연맹 회장을 해봐야겠다는 포부는 있었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이 사장은 지도자 등 젊은 빙상인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런 분위기에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선수단장을 맡는 등 공적이 적지 않았던 윤 회장도 빙상인들에게 연맹을 돌려주는 게 맞다며 출마를 포기했다. 한국 빙상 역대 최연소 회장의 탄생 배경이다.

▲젊은 리더십에 주어진 막중한 과제…韓 체육, 무너진 정부와 관계 회복 어떻게 풀까

젊은 회장들이 배출됐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체육 전체는 물론 각 종목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잖다.

유승민 당선인은 당장 무너진 정부와 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 한국 체육의 주도권을 놓고 이 회장이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체육회와 문체부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의 예산을 받아야만 체육회의 행정을 위한 집행이 이뤄질 수 있는 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미 유 당선인은 문체부 유인촌 장관, 장미란 제2차관을 만나 관계 개선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정부도 미운 털이 박힌 이 회장이 아닌 만큼 유승민 당선인에게 전폭 지원을 약속한 상황이다. 여기에 선거 뒤 유 당선인은 "한국 스포츠의 근간인 학교 체육을 다시 세우겠다"는 등 포부를 밝혔다.



이수경 당선인의 책임감도 막중하다. 이 당선인은 "당장 내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빙상은 동계스포츠의 간판 스타"라면서 "선수들이 마음 편히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대회를 신설해 선수층과 코치진 등 저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빙상은 파벌 싸움 등 갈등이 심한 종목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이 당선인은 "솔직히 의견이 다 같을 수는 없기에 반대하는 얘기도 많이 들으면서 타협점을 찾겠다"면서 "연맹에 익명 제보 시스템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소통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동문 당선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협회장 선거가 끝났지만 선거위에 문제가 많았던 만큼 법적 공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택규 회장은 "선거 무효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 선거위는 지난 8일 김 회장에 대한 후보 결격을 공고했는데 대한체육회 실무진으 무리한 결정이라는 해석에도 밀어붙였다. 김 회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였는데 아직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에 "변호사인 내가 책임지겠다"던 오재길 위원장을 비롯해 2명의 위원은 정당인으로 선거위원 자격이 없었던 점도 드러냈다. 결국 법원은 선거위의 결정을 무효로 판결해 김 회장은 후보 자격을 얻었다. 또 법원은 구성에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는 선거위의 제반 절차도 효력이 없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그런데 협회 이사회는 이후 3명의 선거위원을 충원했고, 선거위는 23일 선거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기호 추첨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선거 운동 기간도 다른 후보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 불공평한 상황이었다. 법적 다툼, 여기에 패소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도 강행된 선거였다. 선거 무효가 될 여지가 남은 만큼 한국 배드민턴이 후폭풍을 겪을 공산이 크다.

여기에 문체부의 보조금법 환수 등 협회 행정 문제도 산적해 있다. 이에 대해 김 당선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국고 보조금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면서 종목 갈등과 관련해 "더 열심히 뛰면서 선수 및 지도자, 배드민턴 동호인, 각 관계자와 무조건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체육은 4년 동안 대한럭비협회를 이끌었던 최윤 OK금융그룹 회장도 바뀌는 등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직면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책을 맡게 된 젊은 리더십이 대한민국 스포츠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체육인을 넘어 전국민들의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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