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면 두산 내년을 기대 안할 수 없잖아… KIA 울린 깜짝스타, 고난 속에도 싹은 핀다
- 출처:스포티비뉴스|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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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난처한 상황이었고, 누가 봐도 두산의 위기였다. 선발로 등판한 투수가 3회부터 공을 못 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구상한 마운드 운영이 시작부터 사정없이 꼬였다.
선발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기에 뒤에 미리 몸을 풀고 있는 투수는 당연히 없었다. 게다가 두산은 지난 이틀간 혈전을 치르는 바람에 불펜 소모가 심했다. 선발이 일찍 내려갔으니, 사실상 제2의 선발 투수가 필요했다. 이 선수가 조기에 무너지면 자칫 잘못 경기를 던져야 할 위기였다.
하지만 스타의 탄생은 또 이런 예상 못할 스토리를 먹고 사는 법이다. 두산은 16일 잠실 KIA전에 선발 등판한 최승용이 손톱 부상으로 공을 못 던지게 되자 그간 준비했던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1군에 등록한 뒤 마땅히 나갈 타이밍이 없어 더그아웃만 달구고 있었던 윤태호(22)가 그 주인공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급히 몸을 푼 윤태호는 3회 마운드에 올라 자신의 KBO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은 윤태호의 KBO리그 데뷔전 시점에 대해 "선수가 조금 편하게 던질 수 있을 때"라고 했다. 가뜩이나 긴장할 선수를 경기 승패가 걸린 중요한 시점에 올려 무리하게 박치기를 시킬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고, 윤태호는 만원 관중 앞에서, 0-0으로 맞선 경기에서, 그리고 최소 2~3이닝을 끌고 가야 하는 중책 속에 마운드에 올랐다. 모두가 숨을 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준비를 믿었고, 씩씩하게 던졌다. KIA 타선에 걸출한 스타들이 많았지만 차분하게 공을 던졌다. 초반에는 시속 150㎞를 넘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위주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이후 긴장이 조금 풀리고 자신감이 붙자 커브까지 떨어뜨리며 KIA 타자들을 괴롭혔다. 구위도 좋았고, 커맨드도 좋았고, 변화구의 각도 예리했다. 야수들도 좋은 수비로 도왔다. 그렇게 윤태호는 자신의 경력에 길이 남을 데뷔전을 마쳤다.
이날 윤태호는 4이닝 동안 55개의 공을 던지며 1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만약 윤태호가 무너졌다면 두산은 경기 시작부터 승기를 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윤태호가 6회까지 버틴 덕에 불펜 운영은 경기 전 구상대로 흘러갈 수 있었고, 결국 2-3으로 뒤진 9회 김인태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가 나오며 이틀 연속 끝내기 승리로 3연승을 내달릴 수 있었다. 모두가 고생한 경기였지만 윤태호의 몫이 결정적이었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2022년 두산의 2차 5라운드(전체 49순위) 지명을 받은 윤태호는 입단 직후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미완의 대기였을 뿐이고, 부상도 있어 1군은커녕 2군에서도 등판 기회를 잡기 쉽지 않았다. 병역을 이행하며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로 해 잠시 팬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 2월 열린 스프링캠프 명단에 합류했고, 캠프에서 나름 인상적인 투구를 보여주며 눈도장을 받았다. 모든 관계자들이 "몸이 엄청 좋아져서 왔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런 윤태현은 구위도, 심장도 더 단단해져서 왔다. 이날 트래킹데이터는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4이닝을 던졌는데도 빠른 구속이 나왔다. KBO리그 공식 구속 측정 플랫폼인 ‘트랙맨‘에 따르면 이날 윤태호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52.8㎞에 이르렀다.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강속구가 뿜어져 나왔다. 평균 구속도 150.4㎞로 역시 150㎞의 벽을 넘겼다.
구속보다 더 특별한 것은 공의 회전이었다. 이날 윤태호의 패스트볼 최고 분당 회전 수(RPM)는 2700회가 넘었다. 보통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회전 수를 놓고 보면 슬라이더가 훨씬 많기 마련인데 윤태호는 패스트볼의 회전 수와 슬라이더의 회전 수가 엇비슷할 정도였다. 그만큼 패스트볼에 회전이 잘 걸렸다. 수직무브먼트도 리그 평균 이상이었다.
물론 RPM이나 수직무브먼트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과감한 패스트볼 승부를 해도 괜찮은 수치가 찍혀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좌·우 로케이션까지 되며 KIA 타자들은 어려운 승부를 해야 했다. 커브의 스트라이크 구사 능력이 좋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두산이 그간 이 선수에게 기대를 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윤태호는 "1이닝만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매 타자마다 ‘이기자‘고 생각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준비 상황이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충분히 풀고 올라갔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면서 "데뷔전이라는 긴장감 덕분에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더해지면서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 만원 관중의 함성을 처음 들어보는데 짜릿했다. 자주 듣고 싶다"며 강심장을 과시했다.
두산은 올해 정규시즌 9위에 머물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내년을 바라보는 단계다. 하지만 마냥 처져 있는 것은 아니다. 박준순 최민석 등 올해 신인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윤태호까지 가세하면서 내년을 더 기대할 수 있는 팀으로 자리하고 있다. 힘겨운 시기 속에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는 희망들이다. 이 전통의 명가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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